직장내 괴롭힘 여부 가르는 '업무상 적정성' 판단기준은…

입력 2023-06-20 17:37  



지방의 외딴 산간지역 한 병원. 해당 병원은 물론 그 지역 일대에서도 압도적인 영향력 있는 외과 과장이 몇 명의 전문의나 인턴을 상대로 수 차례 언성을 높이며 아래와 같이 질책하고 그 중 한 사람에게는 폭행까지 행사했다고 가정해보자.

" 나는 성질머리가 원래 이렇다. 제 할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새끼들. 아주 그냥 대놓고 조지는 게 내 전공이거든. "
"왜? 꼽냐? 넌 무슨 영웅인 줄 아는데 넌 그냥 순발력 없는 겁쟁이일 뿐이야!
“못 하겠어? 못하겠으면 언제든지 나가라고! 안 붙잡아!
“아니 왜 갑자기 의사인 척하고 있어? 어차피 넌 천만원만 챙기면 되는 거 아니었냐?

Scene #1.
폭언을 견디다 못한 전문의와 인턴은 해당 외과 과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의료법인에 신고하였고, 의료법인에서는 외과 과장이 지위의 우위를 이용하여 막말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였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모멸감을 느끼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므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외과 과장에 대해서는 징계처분을 하였고, 피해자들과 분리시키기 위해 다른 분원으로 전보처분 하였다. 피해자들은 외과 과장을 상대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하였다.

Scene #2.
의사로서의 사명감도, 실력도 아직은 2퍼센트 부족한 강원도 정선 돌담 병원의 전문의 윤서정, 강동주, 서우진, 인턴 장동화는 외과 과장 김사부를 만나 때로는 뼈아픈 질책과 수위 높은 발언도 들어가며 김사부와 부딪히고 갈등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마침내 김사부를 통해 자신의 껍데기를 깨고 나와 환자를 살리는 것 외에는 권력에도 금전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의료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 이들은 ‘살린다. 무조건 살린다’는 김사부의 발언을 금과옥조로 삼고, 한 때 자신에게 지독한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하였던 김사부를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며 철없었던 시절 있었던 김사부와의 일화를 낭만으로 기억하고 있다.

전형적인 직장인 괴롭힘의 사례일 것 같은 외딴 지방병원의 외과과장과 전문의들이 처한 장면은 뒤집어 보면 얼마전에 시즌 3까지 성황리에 끝난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명장면들이 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이 근로기준법에 정의되고 이와 관련된 각종 의무들에 대한 법적 토대가 마련되어 시행된 지 어느덧 만 4년이 되어간다. 직장 내 괴롭힘은 처음 근로기준법에 반영될 당시부터 그 개념의 모호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인 업무상 적정성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직장 내에서 갈등 관계에 있는 피해자가 불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유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 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치환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이었다. 상급자가 부하 직원들에 대한 업무상 지도 감독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지적 받으면, ‘다 자기들 잘 되라고 필요해서 하는 말인데 고마운 줄도 모른다. 사자 새끼는 원래 벼랑에서 던져 강하게 키우는 법인데 이런 식이면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한편, 정상적인 업무상 주의 내지 지도와 직장내 괴롭힘은 반드시 구분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업무상 필요성과 업무상 상당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업무상 필요성 측면에서는 대상 근로자에게 문제행동이 있었는지, 지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문제 행동이 있었다면 그 내용과 정도가 어떠한지가 고려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업무상 상당성 측면에서는 지도의 내용, 태양, 장소, 시간의 길이, 시간대 다른 근로자에 대한 지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상 직원의 문제 행동의 유무 및 지도의 목적 △대상 직원의 문제행동의 내용 및 정도 △주의 지도의 내용이나 양태 및 인격 침해 정도 △주의 지도의 장소, 소요시간, 시간대 △상사와 부하의 관계, 상사의 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업무상 적정 범위의 행위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판례도 직장 내 괴롭힘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특정 표현에 집중하지 않고 사안이 발생한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을 하고 있다. 이에 상급자인 과장이 부하직원이 작성한 문서를 반려하거나 수정을 요구하면서 “일을 이 따위로 하냐”,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어디서 과장이 이야기하는데 말대꾸 질이냐? 과장이 우습게 보이냐?”라고 한 사안에서, 이는 당시 부하직원이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던 중 “내가 지금 거짓 보고를 하느냐, 본인을 도둑놈 취급하느냐”고 하면서 화를 내자 상급자도 이에 대응하여 서로 고성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과장이 상급자로서 그 우위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하급자인 원고의 인격을 비하하거나 모욕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가 있는가 하면(인천지방법원 2022. 4. 19. 선고 2020가단274450 판결), 어린이집 원장이 교사에게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거 어떻게 빈칸이 올 수가 있어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업무가 많은데 빈칸을 낼 수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거야, 지금. 이거 어떻게 하실거야? 일을 안 하겠다는 소리예요? 응? 선생님 무슨 일 하실거예요, 그래서? 안 하실거야? 본인이 무엇을 하실 건지 얘기를 하시라고!” 한 사안에서는 일상적인 지도 또는 조언 및 충고 수준을 넘어서 지속적이고, 공개적인 질책을 통하여 직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판시하기도 하였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21. 6. 17. 선고 2020가단239162 판결). 동일하게 업무상 지도감독이라는 형식을 띄고 있더라도 사건의 맥락이나 당사자들과의 관계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마땅치 않게 일을 해오는 부하 직원을 질책할 계획이 있던 당신이라면,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오로지 당신 목적 달성을 위해 혹은 당신의 기분 때문에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방하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로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상 지도감독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는 근로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존중받으며 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업무적으로 필요한 지도 감독을 상당한 방법으로 성심껏 다하는 상급자들을 제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사부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까 우려되어 돌담병원 제자들에 대한 채찍을 접어두고 당근만 주었다면, 우리는 훌륭한 의료인 몇 명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소소한 즐거움을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세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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